중앙아메리카 일대를 떠돌던 아스테카 부족은 ' 콘도르가 뱀을 물고 선인장 위에 앉은 곳을 터전으로 삼으라'는 신의 계시가 실현된 곳을 발견했다. 오늘날, 멕시코시티가 그곳이다. 그곳에 정착한 아즈텍인들은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루며 14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살았었다. 그러다가 에스파냐의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너무나 쉽게 허무하게 정복당하면서 멸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누구였으며 왜 그들은 허무하게 무너졌을까?
끊임없는 논란의 인신공양의식
아스테카족은 무력을 숭배했던 거칠고 남성적인 사회였다. 남자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아야 했고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전쟁에서 진 다른 부족들은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졌다. 처음 인신공양의식을 본 에르난 코르테스는 그 야만성에 충격을 받았다. 에스파냐 본국의 카를로스 1세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살아있는 사내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어 제물로 바치는 모습을 보고 지금껏 목격한 것 중 가장 잔인하고 소름 끼치는 미개한 장면이라며 , 이 미개한 종족을 문명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적었다. 그러한 보고서는 유럽 사람들에게 남미 사람들이 ' 인간이 아닌 동물에 가깝다'는 인상을 만들어냈고, 수백 년이 지나 볼테르 같은 후대 지식인들조차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미개한 종족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러한 인상이 강하게 각인되었었다.
산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어 신에게 바치는 이 제례는 1년에 18번 정도 행해졌고 , 한 번에 수백 명씩 희생되었다. 아즈텍인들은 인신공양 의식을 지배권 유지를 위한 대외적으로 선전 포고하는 의식이라 보는 학자들도 있고 , 그들이 그렇게 인신공양을 많이 한 이유가 실제로 아즈텍인들은 고원지대에서 살고 있던 탓에 가축을 기르기 힘든 여건이므로 단백질 섭취를 위해 피의 의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행하고 그 시체를 요리해서 먹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주로 제물의 인육은 햇볕에 말려 먹거나 불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
어떤 음식재료 보다도 단백질이 월등했기 때문에 피의 의식을 통해 얻어진 인육은 아즈텍인들의 음식들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에르난 코르테즈가 중지시킬 때까지 아즈텍인들은 인육을 즐겨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인육을 섭취하기 위해 피의 의식을 끊임없이 자행했다. 아즈텍 제국이 멸망한 이후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돼지로 대체되었다
신처럼 보였던 백인들
처음 에스파냐 원정대가 아즈텍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아즈텍에 왔는지는 까맣게 모른 채 황제는 이들을 극진히 환대했다. 아즈텍의 달력에 의하면, 코르테즈 원정대가 방문한 1519년은 그들의 창조주 '케찰코아틀'의 귀환이 이루어지는 해와 일치했고 때마침 철 옷을 입고 피부색도 다르고 아메리카에서는 살지 않는 동물을 타고 온 사람들이 아즈텍 문명의 전설에 나오는 깃털 달린 뱀 케찰코아틀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엇 보다도 에르난 코르테즈가 아스테카에 들어왔을 때는 천연두가 크게 유행했었는데 그 당시 아메리카에 없던 질명이어서 그 덕분에 에스파냐 원정대들은 아스테카를 너무도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2500만 명에 육박했던 아스테카의 인구가 천연두라는 질병 하나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에르난 코르테즈 무리들에게 이 천연두가 '신의 은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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