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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종교개혁의 원동력 인쇄기술 과 잉크

by premoietu 2022. 11. 25.

인쇄술과 잉크가 만들어 낸 종이의 대중화 

1450년경 고안된 구텐베르크의 활판 기술은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어  30년 만에 전 유럽으로 전파하게 되었다. 1500년대가 되면 누구든 돈만 있으면 인쇄물을  마음껏 복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활판  인쇄는 금속활자와 인쇄기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활판인쇄가 발명되기 이전 1931년 헝가리 형제에 의해 발명된 잉크가 없었으면 문자 두 장도 찍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1300년대까지만 해도 책 만드는 재료는 주로 양피지였는데 양이나 송아지를 도축해서 얻을 수 있는  양피지는 마리당 기껏해야 4장 정도 나오는 게 다 였다. 성서 한 권을 출판하려면 양을 3백 마리나 잡아야 했었다. 그 당시 책이 귀해서 일반 서민들은 좀처럼 구할 수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종이는 양피지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아주 싼 가격이어서 단숨에 유럽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책값이 싸져서 책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재미있고 풍부한 정보를 책에서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글을 배우려고 해서 문맹률도 낮아지게 되었다. 

 

 

 

 

 

교회의 부패에 맞선 종교개혁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 건축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엄청난 공사비용을 만들어내기 위해  희한한 법을 고안해냈다. '면벌부와 면죄부'가 그것이다. '면벌부' 나 '면죄부' 모두 교회에 금전이나 재물을 바치면 자신이 저지른 죄가 용서됨을 나타내는 증서인데 그 당시 교회에서 발행한 이 증서를 얻기 위해 교회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에 분개한 도이칠란트의 수도자 마르틴 루터는  " 진심으로 회개한 모든 신자는 면죄 증서 없이도 벌과 죄를 완전히 용서받을 수 있다 "라고 적혀있는 반박문을 교회 대문에 붙이게 된다. 루터의 지지자들과 동료들은 이것을 대량으로 복사, 배포를 하였고 루터는 삽시간에 종교개혁의 선봉으로 이름이 알려지며 유명인사가 되었다. 인쇄술의 위력을 깨달은 루터는 팸플릿을 만들어 민중을 선동하는데 적극 활용했고  루터는 25년 동안 2주일에 한 번꼴로 팸플릿 제작했다고 한다.

루터가 펼친 일 들 중 덜 알려져 있지만 매우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자국의 언어인 도이칠란트어로 성서를 번역해서 보급했다는 것이다. 당시 성서는 어려운 라틴어로 되어 있어 일반시민들은 쉽게 접근할 수없었다. 개인이 신앙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 한 루터는 개인이 직접 신과 대면하려면 백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 나라 말로 된 성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번역 작업은 현대 표준 도이칠란트 어가 정착되는데도 기폭제 역할을 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큰 반향을 일으킨 건 그를 따르는 민중들의 지지와 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귀족들은 교회가 차지하고 있던 땅을 차지하고 싶어서 루터를 지지했었다. 아무리 훌륭한 개혁이라도 환경과 조건이 갖추어있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쇄술과 잉크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아마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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